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지하 아이돌 (문단 편집) === 등장 === 1980년대는 일본에서 아이돌 황금시대라고 불렸으나, 그 이후 아이돌 가수의 인기는 급속도로 사그라들기에 이른다. 그래서 1990년대 초중반을 '아이돌 빙하기'라고 부른다. 이 시기 아이돌은 기존의 가수 중심의 활동에서 CM, 배우, [[그라비아]] 등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였다. 그래서 아이돌 가수들은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기가 힘들어졌고, 점차 노상이나 홀 등에서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하게 된다. 이들이 활동을 하는 라이브 하우스나 클럽이 주로 건물의 지하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지하 아이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게 정설이다. [[일본어 위키백과]]에서는 미즈노 아오이, 모리시타 준나, [[토쿠나가 아이]], 스즈키 마리에, [[시시도 루미]]를 지하 아이돌의 원조로 보고 있다. 이런 특이한 문화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1970년대부터 이어져오는 팬덤의 전통이 있다. 7~80년대 여성 아이돌판에는 '[[아이돌 친위대|친위대]]'라는 게 있었는데 아이돌을 응원,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사적으로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대규모 팬덤이었다. 즉 일본에는 한국보다 오래전부터 '''아이돌 팬질이 삶 그 자체인'''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. 저 시절에는 지금과는 달리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친위대들을 '더러운 오타쿠들'이라고 보기보다는 청춘의 한 페이지 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였다나.[* [[https://ja.wikipedia.org/wiki/%E8%A6%AA%E8%A1%9B%E9%9A%8A_(%E3%82%A2%E3%82%A4%E3%83%89%E3%83%AB)|일본 위키피디아 친위대(아이돌) 항목]].] [[헤이세이]] 시기로 접어들며 아이돌 빙하기가 찾아오고 친위대 사이의 난투 사건도 종종 발생하면서 친위대라는 개념 자체는 사라졌으며[* 초기 퍼퓸을 홍보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오키테 포르셰는 [[AV(영상물)|AV]]를 비롯한 각종 성인물/콘텐츠의 범람이 이런 친위대 문화의 종식에 기여했다고 분석하였다. 당시 아이돌 친위대들은 소위 말하는 '[[불량학생]]'들이 많았는데, 자극적인 컨텐츠들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된 이들이 대거 아이돌 팬덤에서 이탈했고, [[초식남]] 계열의 팬덤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덧붙였다. 실제로 당시 친위대들은 일본에서 불량청소년의 상징으로 불리는 특공복에 좋아하는 아이돌의 이름을 새기는 등 소위 [[양키]]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었다. 그러나 90~2000년대로 넘어오며 아이돌 공연장에서 이런 남자들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[[키모오타]]로 불리는 이들이 주류가 된다. ] 아이돌 팬에 대한 이미지도 지금처럼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. 그럼에도 아이돌을 쫓아다니는 팬덤의 수요는 여전히 남아있었으며 그런 수요를 바탕으로 지하 아이돌이라는 활동 형태가 가능해진 것이다. 여기에 2000년대 후반, [[아키하바라]]의 상설 극장에서 활동하던 [[AKB48]]이 메이저 시장에 진출하고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도쿄의 아키하바라, 시부야, 신주쿠, 시모키타자와 등지의 라이브 하우스나 소극장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하 아이돌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. 이러한 이유로 [[AKB48]]의 등장과 대대적인 성공은 소위 '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'이라 불리는 산업 모델과 문화를 일본의 아이돌 시스템에 정착 및 보편화시키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친 분기점으로 평가 받는다.[* [[https://news.yahoo.co.jp/articles/10b865922493139093a261da1e90cf49582d3941]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